기발한 디자인, 독창적인 설계 깔끔하고 안정감 있는 사운드 필자는 오디오에 있어서 성능도 중요시하지만 디자인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얼마전에 새로 들여온 앰프 대신, 이제까지 사용하던 제프 롤런드의 SP8을 아직까지 못내보내는 이유도 다분히 그 디자인 때문이다. 요즘에는 디자인이 뛰어난 오디오 컴포넌트들이 속속 등장하여 애호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물론 애호가들은 그러한 디자인에 걸맞게 획기적인 성능도 따라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요즘 진공관 앰프들은 기술과 성능은 물론, 디자인에서도 진일보하여 어찌보면 진공관 앰프의 새로운 전성 시대를 구가하는 듯하다. V20이라는 인티앰프는 영국 EAR사가 창업 2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진공관식 앰프다. 특히 이 제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 특이한 디자인 감각 때문이다. 위에서 보면 고급 승용차의 V시리즈 고성능 엔진을 연상시키는 묵직하고도 신뢰감이 가는 모습이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면 요즘 꼬마들이 좋아하는 피카츄 인형의 앙증맞음과 많이 닮았다. 또한 크롬 도금의 전면 패널은 필자가 사용하는 B&W 시그너처 30의 유닛 커버와 흡사하여 마치 원브랜드의 제품과도 같은 일치감을 보여준다. 큼직한 실렉터와 볼륨 노브도 돌릴 때의 감촉이 무척 좋다. 뒷면의 입출력 단자도 금도금의 고급 제품을 썼고, 스피커 터미널에 쇼트 방지용으로 부착한 투명 플라스틱 캡도 매우 인상적이다. 우선 외형에서 받은 인상은 멋지다!라는 감탄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그 독창적인 회로 설계 때문이었다. ECC83을 채널당 13개, ECC82를 채널당 2개씩 병렬로 사용하고 있는데, 역시 설계자 파라비치니의 기발한 발상이 돋보인다. ECC83은 높은 SN비, 넓은 주파수 특성, 다이내믹한 음색으로 마란츠 7등 유명 프리앰프에 사용되고 있는 3극관인데, 여기에 사용된 ECC83들은 모두 V20을 위하여 파라비치니가 별도 스펙에 의하여 엄선한 것이라고 한다. 이 특주품 ECC83 26개 중 채널당 10개를 증폭용으로 사용하여 채널당 20W를 얻고 있다. 증폭은 5단 푸시풀 구성으로 안정된 출력 특성을 확보하고 있다. 출력 트랜스 역시 파라비치니가 직접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외지에서 워낙 호평을 받았던 제품이라 상당히 기대를 가지고 시청에 임하였다. 소리 특징은 한마디로 진공관 프리앰프의 음색을 그대로 키운 것 같다. 맑고 깨끗하며 군더더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다이내믹하다. 음폭은 초고역부터 저역까지 완전히 뻗어주어, 20W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스피커 구동력도 보여준다. 처음에 대편성 교향곡을 들으면서 불안하여 아무래도 볼륨에 신경이 쓰였지만, 그것이 기우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잘 설계된 인티앰프라 할지라도 볼륨을 12시 방향까지 올리면 클립핑이 생기기 십상인데, 이 V20은 곡에따라 3시방향까지 올려보았으나 클립핑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필자의 B&W 시그너처 30뿐만 아니라 마침 시청용으로 들어온 토템이나 에이지스 2 스피커에도 모두 물려보았는데 스피커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음색을 훌륭하게 구현했다. 이번호에 필자가 들었던 소형 스피커들의 평이 긍정적이었던 것도 다분히 V20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고 싶다.(최성욱) 전무후무한 디자인에 찬사를… 장르를 가리는 편식성도 없어 처음에는 그 아름다운 겉모습만 들여다보느라고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이 앰프는 아마 숍의 진열장 안에 전시만 해놓아도 구경꾼들이 꼬일 것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디자인 감각이 나오는 것일까…, 지금까지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왔던 모 앰프는 여기에 비하면 족탈불급 이라고 믿어 마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디자인 감각만으로도 이 앰프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이 앰프만 단독으로 들어왔다면 상당히 혼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필자 집에는 이 앰프에 매칭할 만한 스피커가 별도로 없었으니까. 다행이 걸맞는 로트엑스 이온 2 스피커가 따라 들어온 덕에 느긋하게 시청할 수 있었다. 앰프 곁에 누워서 팔베개를 하고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는다. 눈 내리는 겨울밤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오디오의 행복이란 과연 이런 것일까. 달콤하고 윤기가 자르르 흘러내리며 노래부르는 소프라노가 내 품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 스피커와 앰프의 질감이 정밀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악의 리스폰스 2.5에서 들을 수 없었던 재생음의 현란함이 계속된다. 장르를 가리는 편식성도 없다. 재즈며 팝까지도 유려하기 짝이 없고, 트럼펫의 뻗침도 청명한 가을하늘 같다.(김남)